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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analog)와 디지털(digital)

못난이 유병대 2015. 10. 16. 15:50
[예문] 아날로그(analog)와 디지털(digital)

디지털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는 어떤 책에서 신데렐라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요정의 도움으로 궁중의 파티장에 찾아간 신데렐라는 자정이 되자 한쪽 유리구두만 남겨두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왕자님은 신데렐라를 못 잊어 유리구두를 가지고 그 발에 맞는 임자를 한 명씩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노력 끝에 마침내 신데렐라를 찾게 된다. 그런데 과연 현실이라면 그런 방법으로 신데렐라를 찾을 수 있을까?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가령 왕자님은 수많은 관리를 풀어 전국의 소녀들에게 구두를 신겨봐야 할 것인데, 이런 경우 엄청난 시간이 소비된다. 또 구두에 맞는 발을 가진 소녀가 아마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이들을 확인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작 구두의 주인공 신데렐라는 발이 훌쩍 커져 더 이상 그 구두를 신을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 (1)

만일 신체상의 특징을 기호화하여 분류해 두었다면 신데렐라를 찾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눈동자 색깔, 머리 색깔, 키, 목소리, 발 사이즈, 피부색, 얼굴형, 체형 등이 코드화되어 있다면 신데렐라를 찾는 것은 엄청나게 쉬워진다.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를 찾는 데 들어가는 경비와 노력도 엄청나게 절약할 수가 있다. 이처럼 디지털이란 지식에 관련된 여러 정보들을 수량화, 기호화하는 것으로 시간과 경비를 절약한다는 의미에서 경제학적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사전적으로 디지털(digital)이란 손가락이란 뜻으로, 라틴어 디지트(digit)에서 온 말이다. 손가락으로 1, 2, 3, 등등을 셀 수가 있다. 그래서 손가락은 0과 1을 이용하는 디지털 방식을 상징한다. 반면에 아날로그(analog)는 사전적으로 '있는 그대로 모방한다'라는 개념이다. 예컨대 아날로그 방식의 TV는 소리, 빛, 전기 등의 파장을 갖는 것으로 디지털 TV보다 자연에 가깝다. 반면에 디지털 TV는 화상이나 음성 신호를 컴퓨터 파일이나 CD에서와 같이 디지털 신호로 바꾼 것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선명한 화질을 얻을 수 있다. (3)

디지털처럼 분류하고 기호화한다는 것은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또한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은 높은 경제적 가치와 이어진다. 그래서 디지털은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이 되어 버렸다. '아날로그'라고 하면 낙후된, 경쟁력이 없는 것을 대변하는 듯하고, '디지털'이라고 하면 새롭고 경쟁력 있는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회는 온통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자는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서가를 가득 채우던 백과사전은 한 장의 CD 속에 쏙 들어가 버리고, 비디오 가게나 동네 슈퍼도 컴퓨터가 없으면 장사를 못한다. 이제 디지털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4)

그런데 디지털로 바뀌고 있는 지금 세상은 과연 이전보다 좋아지기나 한 것인가? 강의시간에 가끔 학생들이 핸드폰이 없던 시대에 연애를 어떻게 했냐고 물어 온다. 학생들에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연애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다방(옛날에는 카페가 아니라 다방이 있었다.)에서 상대편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고 말을 해준다.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이 안 오면 그냥 바람맞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준다. 학생들은 재미있다고 웃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웃을 일도 아니다. 이제 핸드폰이 있음으로 해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바람을 맞을 수도 없다. 상대방이 어디 있든 연락이 가능하기에 지금이 옛날보다 편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지금의 연애가 이전의 연애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전에 학교 앞 서점 유리창에 빽빽이 붙은 메모 용지를 보지도 못한 학생이니 핸드폰이 없는 연애나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긴긴 과정을 견뎌야 하는 괴로움을 모르면 만남 자체가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법이다. (5)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 부록으로 책 뒤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편지를 여러 통 볼 수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수많은 서신을 남겨놓아 후대 학자들이 마키아벨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수많은 서신을 남겨 '사단칠정론'과 같은 중세 철학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서신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가? 이메일로 아주 편리하게 편지를 대신하는 지금은 옛날만큼 상자 속에 그리운 편지들을 보관하지 않는다. 이메일은 어느 정도 보관하고 있다가 간편하게 지우면 그만이고. 또 개인마다 메일 용량에 제한이 있어 용량이 차면 결국 지우게 되어 있다. 먼 훗날 학자들은 우리 시대의 인물을 연구할 때 개인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한탄할지 모른다. (6)

인터넷 서점이나 인터넷 몰에서 책이나 물건을 구입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생각한 상품과 실제 상품이 같지 않아 낭패를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책이든, 생활도구이든, 옷이든 직접 눈으로 보고, 또 입어봐야 만족한다. 아직도 영상 이미지는 우리 눈의 망막만큼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상거래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상품을 실물과 같이 보고, 그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순수한 온라인 닷컴 기업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클릭 앤 모르타르(clicks and mortars) 기업들이 더 호황인 것만 보아도 그렇다. (7)

나는 가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좋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 더디 가고, 때로 느리고, 때로 멈추는 것도 빨리 가는 것 못지않게 필요하다. 전자메일보다 때 묻은 편지가, 핸드폰보다 직접 골목길을 돌아 친구 집에 찾아가는 것이 훨씬 따뜻하고 정겹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디지털도 인간다운 따뜻함을 지니기 위해 아날로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디지털만 외치다가 우리 모두는 차가운 기계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8)

_정희모·연세대 교수

[네이버 지식백과] [예문] 아날로그(analog)와 디지털(digital) (글쓰기의 전략, 초판 2005., 50쇄 2012., 도서출판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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